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문단 편집) === 전후 === 전후 팔켄호르스트는 전쟁범죄 혐의로 영국군에게 기소되었다. 그가 기소된 것은 그가 노르웨이 주둔군 사령관으로 제직하던 당시, 포로로 잡힌 영국 특수부대 코만도 대원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인 일명 "코만도 명령"에 협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팔켄호르스트가 "포로로 잡힌 코만도 대원들을 심문할 경우 그들을 24시간 이상 살려두면 안 된다"와 "붙잡힌 코만도 대원들을 방첩대(SD)에 넘겨 총살하라"라는 명령을 내린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그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대로라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으나 뜬끔없이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헤딘은 팔켄호르스트가 1941년 포로로 잡힌 뒤 처형될 예정이었던 노르웨이 저항군 대원 10명을 살려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히틀러에게 제출해 최종적으로 저들의 처형을 막았다고 주장했고, 이를 근거로 그의 죄를 참착해달라고 요청했다. 스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팔켄호르스트에게 내려진 판결은 사형 대신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팔켄호르스트는 복역 중이던 1953년 7월, 건강이 악화되어 가석방되었다. 그의 고향 브레슬라우는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폴란드]]령이 되어버렸던 관계로, 그는 브레슬라우에서 추방된 자신의 가족이 정착한 [[작센]] 남부의 홀츠민덴으로 돌아갔다. 팔켄호르스트는 이후 그곳에서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다 196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